하드웨어 엔지니어링만큼은 인공지능(AI)의 침공으로부터 안전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한 시연 영상은 그 믿음을 보기 좋게 깨뜨렸습니다. 차세대 AI로 추정되는 에이전트가 간단한 프롬프트 하나로 복잡한 드론 비행 컨트롤러(Flight Controller)를 설계해낸 것입니다. 백지상태에서 제조 준비가 완료된 파일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3시간 13분 56초.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커피 브레이크를 가져야 하는 ‘탄소 기반 생명체’로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입니다.
**“GPT-6 아스트라(Astra)”**라는 다분히 공상과학적인(혹은 팬픽 같은) 이름이 붙은 이 AI 에이전트는 오픈소스 전자 설계 소프트웨어인 KiCad 내에서 직접 구동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개발자의 포스트에 따르면, 이 AI는 고성능 FPV 드론의 두뇌 역할을 하는 F405 6층 레이어(6-layer) 비행 컨트롤러의 회로도(Schematic) 작성부터 PCB 레이아웃 설계, 배선(Routing), 부품 배치에 이르는 전 과정을 단독으로 처리했습니다.
단순히 그럴싸한 그림을 그려낸 수준이 아닙니다. 이 AI의 진가는 ‘자기 수정’ 능력에 있습니다. 설계를 마친 후 스스로 전기 규칙 검사(ERC)와 디자인 규칙 검사(DRC)를 수행해 오류를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회로와 레이아웃을 수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모된 토큰만 무려 5,200만 개에 달합니다. 작업의 결과물로 거버(Gerber) 파일, 드릴(Drill) 데이터, 부품 명세서(BOM), 그리고 3D 모델 파일까지 즉시 제작 공장에 보낼 수 있는 수준의 패키지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물론 아직 실제 시제품으로 제작되지는 않았기에, 이 컨트롤러가 실제로 드론을 날릴 수 있을지 아니면 그저 화려하게 연기를 내뿜으며 장렬히 전사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AI가 물리적 세계의 설계에 도전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자연어 명령만으로 3D 프린팅이 가능한 로봇 부품을 설계하고 검증하는 AI 에이전트를 목격한 바 있습니다 일상 언어로 로봇 부품을 설계하고 검토하는 무료 AI 에이전트 . 하지만 단순한 기계적 구조물을 넘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한 전자 회로의 논리 세계로 진입했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도약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이번 시연이 조작 없는 사실이라면, 이는 하드웨어 설계 전과정 자동화(Full Automation)를 향한 기념비적인 발걸음입니다. 복잡한 다층 PCB를 설계하는 것은 숙련된 엔지니어도 며칠, 길게는 몇 주가 걸리는 고도의 전문 작업입니다. 이를 추상적인 설명 몇 줄로 단 몇 시간 만에 끝낼 수 있다는 것은 하드웨어 프로토타이핑과 혁신의 속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설명하는 것이 곧 만드는 것"이 되는 미래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복잡한 하드웨어 개발의 진입 장벽이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은 인간 엔지니어의 자리가 안전해 보입니다. 누군가는 직접 인두기를 들고 납땜을 해야 하며, AI가 커패시터 배치에 대해 고약한 유머 감각을 발휘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안전한 기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이제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