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레이션 중심 설계가 로봇을 멍청하게 만들고 있는가?

휴머노이드 로봇의 패권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지금 아주 흥미로운 ‘철학적 격돌’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쪽에는 NVIDIA를 필두로 한 AI 거물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드웨어를 설계할 때부터 AI 학습을 위한 시뮬레이션이 용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시뮬레이션 기반 설계(Design for Simulation, DFS)’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40년 경력의 베테랑 로봇 공학자가 이 모든 접근 방식을 향해 “S.T.U.P.P.I.D.(멍청하다)“라는 직설적인 비판을 날리고 나섰습니다.

이 날 선 비판의 주인공은 로봇 시뮬레이션 기업 두 곳을 공동 창업한 40년 경력의 시뮬레이션 전문가, 스콧 월터(Scott Walter) 박사입니다. 월터 박사는 시뮬레이션의 한계가 하드웨어 설계를 좌지우지하게 두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퇴보적인 트렌드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이번 논란을 위해 **S.T.U.P.P.I.D.**라는 새로운 역두문자어(Backronym)를 만들어냈는데, 이는 **‘시뮬레이션에 제약되어 성능이 저하된 제품 통합 설계(Simulation Throttled Underperforming Product Integration Design)’**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NVIDIA의 수석 연구원 짐 팬(Jim Fan) 박사가 주도하는 철학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짐 팬 박사는 현대적인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 RL)이 대규모로 작동하려면 하드웨어와 시뮬레이션이 ‘공동 설계(Co-design)‘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는 “로봇이 시뮬레이션에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강화 학습은 꿈도 꾸지 마라"고 단언하며, 설계 과정에서 시뮬레이션을 최우선 순위(First-class citizen)로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월터 박사는 이것이 전형적인 ‘주객전도(The cart before the horse)‘라고 반박합니다. 그는 구체적인 사례로 **유니트리(Unitree Robotics)**를 꼽았습니다. 유니트리의 신형 휴머노이드 H2는 기존 G1의 기계적으로 진보된 병렬(Parallel) 발목 관절 설계를 버리고, 강화 학습에 더 유리한 직렬(Serialized) 설계를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외에도 복잡한 텐던 구동(Tendon-driven) 방식의 손 제작을 피하거나, 스마트 모터의 성능을 억제해 시뮬레이션이 다루기 쉬운 선형적 반응을 유도하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월터 박사의 시각에서 볼 때, 엔지니어들은 ‘시뮬레이션과 현실의 간극(Sim2Real Gap)‘을 두려워한 나머지, 복잡하고 뛰어난 현실을 반영하도록 시뮬레이션을 발전시키는 대신 시뮬레이션 수준에 맞춰 현실(하드웨어)을 왜곡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이번 논쟁은 단순히 학계의 말싸움이 아닙니다. 로봇 공학의 ‘영혼’에 관한 싸움입니다. 만약 ‘시뮬레이션 우선’ 방식이 업계의 표준이 된다면, 우리는 학습시키기는 쉽지만 물리적 세계에서는 근본적으로 성능이 떨어지거나 효율성이 낮고 취약한 로봇들을 보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는 기계의 성능보다 소프트웨어 모델의 편의성을 우선시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월터 박사의 비판은 엔지니어들을 향한 일종의 ‘선전포고’입니다. 도구(시뮬레이션)의 현재 한계에 맞춰 하드웨어를 하향 평준화할 것이 아니라, 도구 자체를 혁신하라는 주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우리는 구조 해석 소프트웨어를 기쁘게 하려고 다리를 설계하지 않는다.”

궁극적인 목표는 NVIDIA의 ‘아이작 심(Isaac Sim)‘에서 보기 좋은 로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는 로봇을 만드는 것입니다. 최고의 설계는 시뮬레이터가 무엇을 처리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로봇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