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황당할 정도로 대담한 약속을 남발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 스케일이 아예 지구를 벗어났다. Y 콤비네이터(Y Combinator) 출신의 유망주 **코스믹 로보틱스(Cosmic Robotics)**가 테라포밍의 전초기지를 자처하며 화성 건설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은 2030년대 중반까지 화성에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상세 로드맵을 발표했는데,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선발대’에게 산소나 식량, 혹은 22분에 달하는 통신 지연을 견디기 위한 심리 상담 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로봇이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SpaceX)**가 행성 간 이동을 위한 ‘셔틀버스’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면, 코스믹 로보틱스는 그 버스가 화성에 도착했을 때 승객들이 내릴 정류장과 숙소를 짓는 종합건설사가 되겠다는 전략이다. 이들이 내세운 “화성에 도시를 건설한다"라는 미션은 단순히 냅킨에 끄적인 몽상이 아니다. 이미 지구상에서 자율주행 중장비를 현장에 투입하고 있으며, **나사(NASA)**와 달 건설 계약을 체결해 협업 중인 기업의 치밀한 전략이다. 우주 건설이라는 판에 처음 뛰어든 초보가 아니라,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이 무대를 화성으로 옮긴 셈이다.
태양광 발전소에서 화성의 평원으로
이들의 계획을 실리콘밸리 특유의 허풍으로 치부하기엔 코스믹 로보틱스가 지상에서 거두고 있는 성과가 꽤 묵직하다. 이들의 주력 모델인 약 4.5톤(10,000파운드)급 로봇 **코스믹-1(Cosmic-1)**은 현재 미국 전역의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맹활약 중이다. 이 자율주행 괴물은 약 40kg에 달하는 태양광 패널을 폭염과 폭우, 폭설 속에서도 밀리미터(mm) 단위의 오차 없이 정밀하게 배치한다. 보고에 따르면 인간 작업자보다 두 배 이상의 생산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지상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지탱하는 거대 데이터 센터 건설 분야로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지상에서의 경험은 화성 공략을 위한 든든한 기초가 된다. 빌트 로보틱스(Built Robotics) 출신의 제임스 에머릭(James Emerick)과 스페이스X, 나사 JPL(NASA JPL), **릴러티비티 스페이스(Relativity Space)**를 거친 루이스 존스(Lewis Jones) 등 공동 창업자들은 이제 우주 탐사의 병목 현상이 ‘로켓’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진짜 문제는 화성에 도착한 뒤에 무엇을 하느냐는 것이다. 기초 공사는 누가 하고, 거주구는 누가 세우며, 전력망은 누가 깔 것인가? 그들의 해답은 스타십(Starship)에 실려 가기 전, 지구의 가장 가혹한 건설 현장에서 이미 검증을 마친 숙련된 로봇 군단이다.
이들의 논리는 냉혹할 정도로 단순하다. 텍사스의 뙤약볕 아래서 데이터 센터를 자율적으로 지을 수 있다면, 평균 기온 영하 60도의 화성에서 거주구를 짓기 위한 기술적 토대는 이미 마련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행성 간 종합건설사의 탄생
코스믹 로보틱스의 로드맵은 막연한 희망 사항이 아니다. 현재 운용 중인 시스템을 달과 화성 환경에 맞춰 진화시키는 단계별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이 꼽은 핵심 과제는 바로 ‘노동력’이다. 우주에는 사람이 없다. 도시를 세우려면 건설, 제조, 농업이 필수적인데, 소수의 우주비행사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규모다. 로봇만이 유일한 확장 가능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이 계획은 다음과 같은 능력을 갖춘 자율주행 기기들의 생태계 구축에 달려 있다:
- 부지 조성(Site Preparation): 지형을 평탄하게 다지는 작업이다. GPS도 없고 토양 성분도 생소한 외계 행성에서는 훨씬 복잡한 과제다.
- 인프라 구축(Infrastructure Deployment): 전력 시스템, 태양광 패널 어레이, 도로망 등을 설치하는 작업이다.
- 거주구 건설(Habitat Construction): 희박한 이산화탄소 대기와 치명적인 우주 방사선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수 있는 가압 구조물을 조립하고 밀봉하는 과정이다.
물리학적인 한계를 제외하고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자율성’이다. 지구와 화성 사이에는 왕복 최대 24분의 통신 지연이 발생하기 때문에, 휴스턴 관제소에서 조이스틱으로 로봇을 조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로봇 스스로 예상치 못한 바위를 피해 가거나, 기계적 결함을 자가 진단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우주 산업의 새로운 생태계
코스믹 로보틱스와 같은 기업의 등장은 상업 우주 산업이 중요한 변곡점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이제 우주 경쟁은 단순히 ‘누가 로켓을 쏘느냐’의 단계를 넘어섰다. 발사 이후의 “그다음은 무엇인가(What next?)“를 해결하기 위한 거대한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나사가 기초 과학과 탐사에 집중하고 스페이스X가 운송 수단을 완성하는 동안, 전문 기업들이 외계 인프라 구축이라는 궂은일을 맡기 시작했다.
이는 스페이스X와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공생 관계’에 가깝다. 머스크에게는 화성 이주민들이 살 집을 지어줄 파트너가 필요하고, 코스믹 로보틱스에게는 4.5톤짜리 장비를 현장까지 배달해 줄 든든한 화물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화성 도시로 가는 길은 부식성이 강한 과염소산염 먼지부터 행성 전체를 뒤덮는 모래폭풍 속에서의 전력 확보 문제까지, 거대한 공학적 난제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코스믹 로보틱스는 대담한 도박을 걸었다. 외계 건설의 가장 어려운 문제들은 바로 여기 지구에서 태양광 패널 한 장을 설치할 때마다 조금씩 해결되고 있다고 말이다. 만약 이들의 계산이 맞다면, 미래의 첫 번째 화성 입주자는 로봇이 미리 닦아놓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게 될지도 모른다.
